2013 성서한국 전국대회/2013.08.08

[선택강의 리뷰] 인문학, 사람의 이야기 (손성현)

성서한국 2013. 8. 8. 21:23




사람씩 짝을 지어 1 동안 짧은 역할극을 했다. 사람은 교사, 사람은 학생 역할이다. 손성현 목사님이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리자, 100 명의 수강생들이 둘씩 지어 어색한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 사람과 정해진 주제도 없이 역할극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목사님은 이런 대화로 강의를 시작하셨을까? 역할극이 끝나자 목사님께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짧게나마 얼굴을 스쳐간 감정들을 알아차렸는지 물었다. 상대의 얼굴을 보고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목사님은 인문학이 바로 속에서 사람의 결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때로는 누군가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해도 뭉클해질 때가 있다. 얼굴에 서린 기운이 사람이 치열하게 살아온 삶을 그대로 외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됨의 무늬를 확인할 있는, 인문학 정신이 담긴 중요한 이야기 가운데 『신데렐라』라는 작품이 있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 안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갈등들이 녹아있다. 형제간의 갈등, 부모와의 갈등 같은 것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한 문제이다 동화를 읽는 어린이들 역시 이런 갈등들을 안고 산다. 어린이들은 갈등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갈등에서 비롯된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는 못하지만, 부모나 형제에 대한 원망이나 서러움 같은 감정들을 분명히 모두 경험해보았다. 다시 말해 감정을 경험했다고 해서 모두가 어려서부터 감정을 객관화시킬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속에서 꾸준히 사람의 결을 읽어야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에서 신데렐라는 마법사의 도움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이야기는 당시 구전되던 신데렐라 이야기를 페로가 궁정 사람들을 위해 각색한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구전되었던 그림형제의 『신데렐라』에서는 마법사가 나타나 마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신데렐라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당할 때마다 어머니의 무덤가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다. 무덤 곁에는 나무가 그루 있는데 나무에 사는 비둘기 마리가 신데렐라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 신데렐라의 한탄과 소원을 알고 있는 존재가 신데렐라를 계모의 세계에서 구원한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궁정판으로 거듭나면서 변질됐다. 환상과 마법이 한탄과 소원의 눈물을 대신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귀족들이 사랑하는 궁정판 이야기들이 있다. 때로는 구질구질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다른 걸로 바꿔 채운, 귀족들이 좋아하는 책들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서는 일이다. 우리는 나의 얼굴 혹은 이웃의 얼굴을 대면할 있는 독서를 해야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허전함과 괴로움과 없는 짜증은 시대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시대에 진실한 이야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안의 이야기를 찾아내야 한다. 이야기가 우리를 사람 되게 하고 있게 해줄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 때문에 가난해진다고 해도 괜찮다.


우리의 삶이 담긴 이야기를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 할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도구로 삼지 않는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사랑의 의도를 의심해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나 자연을 바라보며 그것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감상의 깊이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을 향유할 수도 없다. 그저 취한 듯이, 시간이 멈춘 듯이 아름다운 장면에 목적 없이 빠져들 우리는 작품의 목소리를 들을 있게 된다. 이렇게 작품과의 운명적인 마주침을 칸트는 '놀이'라고 불렀다. 진짜 아는 사람은 진짜 사랑을 있는 사람이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인간인 한에서만 놀이하며 놀이하는 한에서만 인간이라는 말을 했다. 우리가 인간의 얼굴로 살기 위해선 놀아야 한다. 앞에 있는 대상을 욕망으로 사용하지 않고 그저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를 인간이 되게 해준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에 이야기 하나 남기기 위해 사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듣고 말하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흐르면서 삶의 구비 구비를 만들어 간다. 어떤 이야기를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의 삶이 결정된다. 삶의 이야기를 잡아끌어 기꺼이 함께 흐르고 싶은 크고 깊은 이야기를 만나지 못하면 우리는 두렵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극히 이기적인 흔적을 여기 저기 남긴다. 그럴 이야기의 물줄기는 약해진다. 다른 이야기와 만나기 위해 나를 고집하지 않는 , 나를 위해 너를 이용하려는 습속을 경계하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 우리의 시간을 상품 가치로 환원하는 사이비 이야기에서 우리를 포기해선 된다. 물질적인 가치, 가시적인 성과, 인습적인 통념에 이끌리는 생각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인문학을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놀이를 통해 우리는 깊고 넓은 강에 닿게 것이다.



*최세희 기자 (2013 성서한국 전국대회 매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