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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27. 16:49


2009 성서한국 대회 주제 “회심”이란?

1. 짐 월리스의 ‘역사(사회) 속의 회심’

짐 월리스는 그의 책 ‘회심’(IVP)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참다운 회심을 말한다. “성경에서 회심은 언제나 역사에 탄탄하게 기초를 두며, 사람들을 둘러싼 실제 상황을 다룬다. 다시 말해, 성경적 회심은 역사적으로 구체적이다.”(짐 월리스, 37쪽) 특히 짐 월리스는 미국적 상황 속에서 자신의 ‘역사 속의 회심’은 인종차별주의와 베트남 전쟁 속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났다고 말한다(24, 25쪽).
그러나 그의 ‘회심’이 아무리 성경적이고, 바른 지적을 하고 있다고 해도 ‘짐 월리스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종차별과 아메리칸 드림으로부터의 회심을 담아야 한다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분단과 냉전체제에서의 안주, 부동산 투기와 가족이기주의 등으로부터의 돌아섬을 회심에 담아야 한다.

2. 나와 우리시대의 회심

21세기 대한민국 현실에서 살고 있는 당신의 회심은 무엇인가?

첫째, 그것은 개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에 의지해 가급적 대도시를 떠나 농촌이나 중소도시, 기회되면 북한에 이주해서 산다.
  * 나 뿐 아니라 자녀들도 입신 출세적 교육대열에 합류하지 않고, 창의력과 은사에 기반한 성경적 교육에 힘쓴다.
  * 재산증식을 주목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하지 않고, 1가구 1주택에 힘쓴다.
  * 가능한 한 육식을 자제하고, 채식을 지향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동물성 사료로 기른 채식동물의 고기는 구입하지 않는다. 가급적 가까운 거리에서 생산된 유기농 식품을 애용한다.
  * 생산자의 정당한 권익보호를 위해 공정무역 제품과 장애인 공동체 등이 제작하는 제품을 구입하고 널리 공유하도록 한다.
  *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적극 이용하고, 부득이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연비가 높고, 배기량이 적은 것을 선택한다.
  * 일회용품을 최대한 제한하며, 중고용품과 재활용품 등 친환경제품을 애용한다.
  * 여행을 한번 갈 때도, 화려하고 안락한 곳보다는 현지인들의 삶에 참여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공정한 여행에 힘쓴다.

둘째, 그러나 회심은 개인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며 공동체적이다.

① 교회들도 이렇게 시도할 수 있다.
  * 농촌 교회와 도시 교회의 먹거리 유통을 일상화한다.
  * 가능한 한 생활협동조합 설립, 운영하고, 소액대부제도 실시하여 영세상인과 서민들의 자활을 지원한다.
  * 교회 상근직원 사례비 격차 최소화하고, 합리적 사례원칙을 개발한다.
  * 재산증식 등 당장 사용 목적 이외의 부동산 구입 하지 않는다.
  * 교회예산의 5~10%는 이웃과 사회를 위해 쓴다.
  * 교회를 사랑하고 협력하되 잘못까지 방관하지는 않고, 하나님나라 선교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도록 힘써 노력한다.

② 기독교기업이라고 한다면,
  * 학력, 남녀 간 임금격차 최소화한다.
  * 비정규직원의 채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정규직으로 속히 전환한다.
  *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며, 불공정한 하도급 관행을 근절한다.
  * 매장 판매원이 인간적 조건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의자를 놓아준다.

③ 시민과 국민으로서,
  * 우리나라가 땀흘려 일하는 것보다 투기나 돈놀이로 부자되는 경제가 아니라, 창의력과 노동, 인간존엄성이 존중되는 경제로 거듭나도록 변혁에 참여한다.
  * 어떠한 전쟁이나 폭력도 반대하고, 평화를 만드는 일에 적극 협력한다.
  * 어려운 이웃에게 당장의 자선을 베푸는 것 뿐 아니라, 불공정과 불의가 지배하지 않는 사회구조 변화운동에도 참여한다.

(복음과 상황 09년 1월호. 특집좌담 “당신은 회심하였는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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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회심을 경험하라
구교형 사무총장(성서한국)

1. 맞춤형 회심

세례 요한은 참으로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정치적·종교적 수도인 예루살렘이 아닌 멀고 힘들고 볼 것 없는 광야에까지 자기를 찾아왔을 때는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다짜고짜로 외친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심판과 저주가 아니라, 천국의 축복을 기대하라 하더냐?" (눅 3:7 / 필자의 의미적 이해)

그렇다. 사실 이들이 그 먼 광야까지 찾아와 세례를 받겠다고 한 것은 오늘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예수 믿고 구원 받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기특한가? 그렇다면 오늘날 새 신자 하나가 제 발로 찾아오면 버선발로 나가 맞아들이듯이 환영의 축복송을 불러도 시원찮을 판에 요한은 느닷없이 저주를 퍼붓고 이어 말한다.
"지금껏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큰 과오 없이 신앙생활 잘 해왔다고 착각하지 말라. 너희들의 좋은 태생(신앙적 환경)이 어디 너희가 스스로 잘나서 얻게 된 것이더냐? 정통적 고백(교리)에 합당한 삶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누군들 그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느냐?"(눅 3:8-9)

이 날벼락 같은 소릴 듣고 기절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두려운 마음에 사람들은 요한에게 묻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어찌해야 합니까?"(눅 3:10)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만 선포된다면 사람은 그에 합당한 바른 고백 앞에 서지 않을 수 없다. 그때 세례 요한은 우리의 막연한 신앙 상식과는 다르게 매우 실제적인 언어로 하나님의 사람됨을 역설한다.
"네 가진 모든 재물 중에 네 생존에 당장 긴요한 것 외의 것들을 그조차 없는 그 사람들에게 나눠주라." (눅 3:11)

성경에 나와 있다고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이런 대화가 그동안 우리가 교회에서 흔히 알아왔던 신앙 상식이 아니었음을 이상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의 의심에 불을 붙이려는 듯 이야기는 더 파격적으로 진행된다.

무리들 가운데 특히 세리들이 나선다. 세리는 로마 치하에서 유대인들에게 부과된 세금을 징수하면서 책정된 이상을 더 뜯어 치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던 일선 세무공무원이었다.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묻자(눅 3:12), 요한은 대답한다.
"세금을 거두도록 지시받은 액수 이상으로 거두지 말라." (눅 3:13 / 쉬운 성경)

이번에는 군병들이 나선다. 이들은 그저 군인이라는 일반적 직업인이 아니라, 식민지 계급시대에 칼 차고 다니며 위세를 부리고 다니던 '일본 순사' 같은 사람들이다. 식민지적 공권력을 이용해 백성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이권을 챙기곤 한다. 요한은 이들에게도 여지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추상적인 신앙고백이나 하나님 사랑을 읊조리는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부패한 자기 삶의 자리를 돌이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권세 좀 있다고 함부로 사람들을 협박하여 돈이나 뜯어내려 하지 말고, 자기 몫에만 충실해라."(눅 3:14)

이렇게 말하면, "그건 세례 요한의 경우지, 예수님도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뽕나무에 올라간 키 작은 세리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난 후 스스로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의 것을 속여 얻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눅 19:8 / 쉬운 성경)

그때 주님은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찾아왔다…인자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눅 19:9-10)고 말씀하며 세례 요한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신다.

이 말을 '행위구원론'이라고 오해하지 말라. 이것은 선행하면 구원받고 선행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 믿고 구원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죄로 점철된 삶과 결별하는 것을 말하며, 선행이 당연히 삶의 증거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폭등하는 전셋값으로 매번 눈물의 이삿짐을 싸야하는 이웃의 아픔을 보면서도, 끊임없이 부동산 재테크에 마음 쏟고 집값·땅값 오르기만 기도하는 부유한 기독교인의 회심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경우에서 본다면 근거가 없는 것이다.

회심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자기 삶의 자리와 관계된 내용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성경적 회심의 특성이 바로 '맞춤형 회심'이다


2. 짐 월리스의 '역사(사회) 속 회심'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가 짐 월리스는 그의 책 <회심>(IVP)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참다운 회심을 말한다.

"성경에서 회심은 언제나 역사에 탄탄하게 기초를 두며, 사람들을 둘러싼 실제 상황을 다룬다. 다시 말해, 성경적 회심은 역사적으로 구체적이다.…회심은 언제나 실제적인 사안이었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현실로부터 분리된 회심이라는 개념은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회심>, 짐 월리스, 37쪽)


특히 짐 월리스는 미국적 상황 속에서 자신의 '역사 속의 회심'은 인종차별주의와 베트남 전쟁 속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났다고 말한다(24, 25쪽).

그러나 그의 '회심'이 아무리 성경적이고, 바른 지적을 하고 있다고 해도 짐 월리스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시 말해 여전히 분단과 양극화의 치열한 현장에 살고 있는 이 땅의 우리는 존 스토트, 로날드 사이더, 짐 월리스로 상징되는 번역신학(신앙), 수입신학(신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미국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종차별과 아메리칸 드림으로부터의 회심을 담아야 한다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분단과 냉전체제에서의 안주, 부동산 투기와 가족이기주의 등으로부터의 돌아섬을 회심에 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 삶에 합당한 내용을 갖는 맞춤형 회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3. 지금, 우리의 회심

자, 이제 묻자. 21세기 대한민국 현실에서 살고 있는 당신의 회심은 무엇인가?

첫째, 개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당신이 부조리한 사회적·교육적 현실은 무시한 채 무한경쟁 시대의 승리자로 살기 위해 눈감고, 귀 막고 그저 입시·취업에만 몰두한다면 회심해야 한다(단 1:8). 극심한 사회적 양극화로 사실상 국가 안에 또 다른 국가가 있는 듯 나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더 좋은 여건과 고액의 연봉, 안락한 생활환경만 좇아 살아간다면 회심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맘몬주의로 심하게 병들어 영적 비만에 빠져 있는데도, 안락한 환경에서 부흥하는 교회를 느끼며 환각적 찬양에 빠져 있다면 회심해야 한다.

둘째, 회심은 개인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며 공동체적이다.

내가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의식적으로 선택하든 그렇지 않든 한 개인의 삶은 모든 부분에서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사회적 책임, 구조적 죄악에 대한 공동체적 고백은 당연히 있어야 할 그리스도인으로서 공동체적 회심이다.

* 먼저, 하나님나라의 시대적 증인 역할에는 무심한 채 성장주의, 물량주의, 개교회중심주의에 물들어 역사와 백성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죄악에서 공동체적으로 회심해야 한다(느 1:6~7).
* 또한, 60여 년간 우리 민족을 결박해온 사탄적 분단 현실과 그로 인한 온갖 사회적 불의와 불공평이 엄연히 살아있는데도 부자 나라, 부자 국민만 된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처럼 살아온 대한민국국민으로서 우리의 국가 목표, 우리의 애국심으로부터 회심해야 한다(사 1:15~17).
* 이미 세계 경제 10대 강국으로서의 풍요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국제 빈곤에 무관심하고,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임을 자랑하면서도 국제분쟁에서 강대국의 입장만 옹호하고, 무분별한 자원 낭비와 유해 물질 방출에 큰 책임이 있으면서도 환경문제 해결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지구촌 일원으로서의 무책임에서 회심해야 한다(사 31:1~3, 6~9).

셋째, 개인적 삶의 회심은 처음부터 사회적·공동체적 의미를 담고 있기에 그것으로부터 돌아서는 것 역시 개인적 결단인 동시에 사회적·공동체적 변혁의 내용을 갖고 있다.


그것은 각자 삶의 적용이기에 여러 가지 실천준칙 같은 것들로 정리할 문제가 아니지만,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도움을 줄 것이다. 회심은
개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 가능한 한 육식을 자제하고, 채식을 지향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동물성 사료로 기른 채식 동물의 고기는 구입하지 않는다. 가급적 가까운 거리에서 생산된 유기농 식품을 애용한다.
* 생산자의 정당한 권익 보호를 위해 공정 무역 제품과 장애인 공동체 등이 제작하는 제품을 구입하고 널리 공유하도록 한다.
*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적극 이용하고, 부득이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연비가 높고, 배기량이 적은 것을 선택한다.
* 재산 증식을 주목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하지 않고, 1가구 1주택에 힘쓴다.
* 일회용품을 최대한 제한하며, 중고용품과 재활용품을 애용한다.
* 여행을 한번 갈 때도, 화려하고 안락한 곳보다는 현지인들의 삶에 참여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공정한 여행
에 힘쓴다.

또한 공동체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기독교기업이라고 한다면,

* 학력, 남녀 간 임금 격차를 최소화한다.
* 비정규직원의 채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정규직으로 속히 전환한다.
*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며, 불공정한 하도급 관행을 근절한다.
* 매장 판매원이 인간적인 조건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의자를 놓아준다.

교회들도 이렇게 시도할 수 있다.

* 농촌 교회와 도시 교회의 먹을거리 유통을 일상화한다.
* 가능한 한 생활협동조합 설립·운영하고, 소액대부제도 실시하여 영세상인과 서민들의 자활을 지원한다.
* 교회 상근직원의 사례비 격차를 최소화하고, 합리적 사례 원칙을 개발한다.
* 당장 사용할 목적이 아닌 재산 증식 등을 위해 부동산을 구입하지 않는다.
* 교회 예산의 5~10%는 이웃과 사회를 위해 쓴다.

동시에 기독교인의 양심으로 마땅히 나서야 할 현안들에 최대한 힘을 보탠다. 특히 생명·인권·평화와 관련된 사안들이 발생했을 때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성서한국운동은 하나님나라의 총체적 복음 안에서, 특히 사회선교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운동이다. 그러나 '사회선교'는 대개 그리스도인이나 교회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은 충분히 넘어선 '성숙하고 특별한 사람들이 오지랖이 넓어서' '세상 속에서의 책임'까지 관심을 넓혀 나간 특별 사역 같은 것으로 오해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새 신분이 생긴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의 삶의 자리가 하나님나라 운동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그게 바로 사회선교의 사명이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선택했든 무의식 중에 참여하든, 모든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자기 자리가 있다. 자신은 정치와 무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선거 때마다 특정 정당 및 후보자를 선택 또는 불참함으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고 있다. 현행 교육 정책을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내가 이 땅의 교육 현실과 무슨 상관있냐?'고 말하는 사람들 자신도 이 땅의 공교육 시스템에 무리 없이 순응함으로 이미 의식 없이 참여하고 있다. '통일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관심사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지만, 복잡한 정치 논리로부터 일상적 가족 모임에 이르기까지 좌파니 우파니를 따지며 감정적 격분을 불러오는 것도 분단과 냉전으로 인한 지난 60년 역사를 무시하고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노파심에서 한마디 덧붙인다면, 위와 같은 덕목들이 구원의 조건이라거나, 곧 회심의 증거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회심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전적 구원의 열매다. 그러므로 회심은 당연히 개인적 느낌이나 추상적인 원리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변화된 삶의 증거로 열매 맺게 되는데, 그게 위와 같은 변화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선교의 자리는 특정한 어느 유별난 사람들의 취향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하고 일상적인 삶의 자리다. 다만 의식하며 책임 있게 감당해 나가느냐, 별다른 의식 없이 그저 습관대로 참여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기왕 사회선교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필수적 삶의 자리라면 배우고, 익혀 바로 감당해야 함이 마땅한 일이다.

바로 그걸 익혀가는 자리가 성서한국대회다. 그래서 성서한국대회는 사회선교 단체들의 박람회나 남을 돕자는 특별히 선한(?) 그리스도인들의 자기 과시장이 아니다. 내 삶의 자리를 복음으로 바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총체적 복음과 사회선교에 대한 바른 이해가 바로 '진정한 회심'이다. 그래서 올해 성서한국대회의 주제가 바로 '회심'이다. 성서한국대회는 그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각 분야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제공하는 지식 박람회가 아니라, 사회 각 분야와 삶의 자리 모두에서 구체적인 나와 우리의 회심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묻는 자리다.

특히 오전 12개로 나눈 영역별 주제강의를 들은 후 각 영역은 다시 10개의 작은 소그룹으로 나누어진다. 각 소그룹들은 무려 6시간 동안 그 분야 주제에 대해 더 깊이 나누고, 운동가와 참가자들이 서로 자기 삶과 고민을 공유하며,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실천들을 모색해 보는 인격적으로 만난다. 사람들은 단순한 지식보다 서로 인격적 도전을 주고받고 소통하며 더 크게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히 접근하기조차 부담스러운 위인들이 아니라, 단지 한 발 앞서 나간 선배들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특히 성서한국대회는 전국에 흩어진 하나님나라 동역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각자의 현장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고 축하하고 축복하며 기도하는 자리다. 정보, 인력, 물적 토대 등 거의 모든 자원들을 독점하고 있는 '서울공화국'을 벗어나면, 누구보다 열악한 환경을 무릅쓰고 치열하게 활동하는 사회선교 단체들과 현장 운동가들이 있지만 이들의 도전과 헌신은 거의 가려져 있다. 성서한국대회는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이들을 만나면서 서로 격려하고 도전받고,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동역자들임을 확인하며 크게 위로받는 사회선교사들의 잔치다. 성서한국대회가 참된 회심을 경험하는 하나님나라의 잔치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