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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7. 21:12

사회선교사대회 파송예배
- 이만열 장로(전 국사편찬위원장)



여러분에게 부탁하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성경에 보면 모세, 기드온, 다니엘 같은 사람들, 다윗 구약에서 많이 본 사람들의 경우에도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 회심이라는 과정을 꼭 거쳤다. 모세가 바로의 딸의 아들로 호위호식하다가 미디안 광야로 도주한 후 40년간의 생활이 회심이 기간이 아니었을까. 호렙산 떨기 앞에서 모세를 부를 적에  '이 민족을 구원하는 지도자로 삼겠다' 했을 때 40년전 모세같으면 "하나님 정말 잘 보셨습니다. 나야말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했을텐데, 40년 후 하나님께서 강권하시는데도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었다.  그러한 그를 들어 민족의 지도자로 쓰셨다.  그 40년의 기간이 자기를 죽이는 기간이었다.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앞에서 자기를 죽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제가 오랫동안 나이가 들면서 느낀 깨달음이이것이다. 젊은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기드온과 삼손 같은 사람은 상당히 대비되는 사람이다. 삼손은 날때부터 소위 점지된 사람이었다. 온전한 회심의 기회가 없어서 대단히 좋은 지도자적 자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그에 비해 기드온은 시골의 참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의심도 많고 겁도 많았다. 몇 번의 기적을 시험하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는 아비집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상을 깨부수고 가라! 는 말씀을 따르게 된다. 기드온에게는 일종의 회심의 기간이었다. 바알은 팔레스타인이 가졌던 신이다. 풍요와 부요와 안정을 약속해 주는 신이다. 장막생활만을 했던 이스라엘민족에게 벽돌로 지은 안정된 집을 갖고 사는 것은 큰 소원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 저 가나안사람들처럼 정착해서 고정적인 농산물 포도, 밀을 제대로 농사지을 수 있을까, 창고에 쌓아두고 걱정없이 살 날이 언제일까 인간적으로 소망하였을 것이다. 이것을 보장해 주는 신이 바알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네 가족들, 아버지대가 가지고 있는 바알을 부수고 나가라고 하신다. 기드온이 겁이 많은 사람이라 밤에 바알신당을 쳐부수고 바알과 그 곁에 있는 아세라를 쳐부수었다. 부요함과 풍요가 있는 그 옆에 아세라, 향략적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부가 있는 그 옆에 건설적인고 건전한 것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향략적인 것들이 늘 쏟아지게 마련이다. 힘없고 연약한 기드온을 지도자로 세우기 전에 바알과 아세라상을 쳐부수고 그 다음에 나가서 300인 동지들과 함께 12만명이상의 미디안과 싸웠다. 그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세우고자 했을 때도 기드온은 이를 거부한다.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의 경우를 보자.
식민통치를 위한 젊은 인재 양성의 의미로 바벨론궁에 끌려 간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 다니엘과 세 친구는 같이 궁중생활의 사치스러움,의 대표인 음식문화를 보고 우리들은 그 음식을 먹지 않고 채소를 먹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하게 읽으면 참 단순하지만 저는 그것을 읽을 적에 그 바벨로니아의 음식, 음료, 향료는 바벨론의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고, 채식을 요구했다하는 것은 유대문화를 고수했다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신앙교육을 받은 그들에게는 바벨론문화에 항거하고 있다고 본다. 자신을 지켜 깨끗하게 지키겠다는 의지이다. 그 음식문화와 함께 바벨론의 타락된 문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을 거부하는데서부터 풀무불에 던짐을 받아도 견딜 수 있는 신앙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은 세속적 문화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속적 문화, 가치관을 가지고 영적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디모데후서 2:20,21절을 보면, 큰 집에는 금과 은과 도기나무그릇이 있지만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다. 이걸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준비된 그릇은 달란트의  문제가 아니라 깨끗함에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금그릇이라도 먼지가 있다면 준비된 그릇이 아니다. 젊은 시절에 정욕을 극복하는 것과 깨끗한 그릇과의 연관성이 있다. 이제부터 하나님앞에 자신을 어떻게 깨끗하게 할 것인가.

두번째로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갖자! 

장로가 대통령이지만, 제대로 된 역사의식이 없어서 역주행이 이뤄지고 있다.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래서 저는 이 나라 리더십을 위해서 기도할 때 제대로된 비전과 역사의식을 갖게 해달라,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온유하고 겸손하여서 들을 귀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기독교적 역사의식은 1.이 모든 천지와 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2.하나님께서 역사를 통치, 운행하신다 3.이 세상과 우주는 시작과 종말이 있다. 4.당신의 사람으로 하나님나라를 이룩하게 하신다. 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런 기독교적 역사관과 함께 일반적으로 역사의 방향이 어느쪽으로 가는가하는 역사의 통찰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세계역사, 민족의 역사가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 세계역사는 인간으로 하여금 역사의 주체자가 되도록, 또 자기가 선 공동체에서 주체자가 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인간개체에 대한 자주적인 입장을 생각할 수 없는 시대가 있었다. 왕정시대, 봉건시대에는 자기문제에 대해 주체적일 수 없었다. 민주화가 된다는 것은 한사람의 문제 또 자신의 공동체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할 수 있고 자기개체적 독자성을 가지고 해결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역사의 방향은 자기 개인의 일 뿐 아니라 공동체의 주체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1980년대 전두환정권시절 많은 해직자가 있었다. 그 중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진보적인 분들은 이에 저항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역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만, 그렇지 못한 방향으로 역사가 흐를 때 그에 대한 저항할 힘이 나온다. 역사의 주체자인 인간을 확대시켜가는 과정, 역사주체자의 수가 확대되어가는 과정이 역사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이는 개인에게는 자유로, 공동체에는 평등으로 나타난다. 

'역사의 살아있는 자'는 어떤 존재인가. 역사의식과 관련되어 중요한 것이다. 이완용도 역사 앞에서 이 길이야말로 우리민족을 위하는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역사관이 다르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 그저 분쟁이 없고 조금 더 부유해지는 길이 좋은 거라는 역사관으로는 이런 입장이 가능할수도 있는 것이다.
스스로 민족을 위한 길이라 했지만 '역사에 죽어있는 자'이다.실학시대의 예를 들어보자. 17-19세기 약 200여년간 실학의 시대가 진행되었다. 임금과 정승도 있었고 판서 수십, 수백명이 있었다. 실학시대를 지나면서 영의정, 좌의정 가운데 누구를 기억하고 있는가. 누가 역사 가운데 살아 있는가. 그 시대를 주물렀던 고관 중에 누가 평가받고 기억되는가. 유형원, 이익 그 사람만이 살아 있다. 다산 정약용 같은 사람말이다. 그는 벼슬길에 올랐던 사람이다. 수원성을 만들 당시, 인문학과 과학에도 능해 거중기를 만든 사람이다.  1801년 남인계통으로 한때 천주교에 관여하였고 19년간 귀향살이를 통해 비로소 지배층에 있을 때 생각지 못한 것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의 삶을 끌어올릴 수 있는가', '백성들로 하여금 정말 인간되게 하는 방법은 뭘까'하고 고민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백성의 삶을 관장하는 목민관에 대해 고민하면서 목민심서 썼다. 당시에는 불운한 생활이었지만 그로 하여금 역사에 남는 인물로 만들어 주었다. 하필 19년간 귀향살이했던 인물을 실학시대 대표적 인물로 기억하는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역사를 통해 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역사의식이 중요하다.

세 번째, 목표와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을 많이 두도록 하라는 요청을 하고 싶다.

70이 지났는데 나한테 친구가 별로 없다. 전화오는데도 없다. 요즘 제가 느끼는 것은 신앙과 학문 목표와 이념을 같이 하는 동지들을 많이 두는 것이 젊은 날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700여명 이상 등록을 하고 좀 더 헌신한 200여명이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뻤다. 그들과 함께 자주 만나고 의논하고 목표를 향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시간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혈연, 지연, 학연, 이해관계에 의해 뭉치게 된다. 일을 쉽게 하기 위해 이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공동의 목표, 이념을 위해 동지를 규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세의 경우에도, 아론과 미리암, 12지파 장로가 있었고 동지들 존재했다.
기드온의 동지 300명이 있어 민족독립이 가능했다. 다니엘은 그와 뜻을 같이 한 친구가 있었다. 전국적으로 신앙의 동지들을 성서한국에서 만났으니 많은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 여러분이 바로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다. 서로 돌아보고 믿음과 선행을 격려하라는 히브리서 말씀처럼 많은 낙심과 절망 포기하고 싶을 때에 서로 격려하고 돕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때, 한국의 복음주의운동이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 깨끗한 그릇이 되어 준비되자 하였는데 그냥 깨끗하게 되는게 쉽지 않다. 아무리 선한 결심을 한다하더라도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는 경건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것이니이다 라는 시편기자의 말씀처럼 경건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말씀과 짝이되어 날마다 기도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 기도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했는데 갈라디아서에서는 항상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했다. 그 가운데 ‘쉬지 말고 기도하라’가 어느날 확 다가왔다. 이걸 내 생활속에서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까 적용하고 있다. 책보다가도 기도하고... 제가 개발한 것은 길가면서 기도하고, 인왕산 오를 때도 기도하고, -그 시간이 제가 가장 기도하기 좋은 시간이다. 버스타고 지하철에서 오가며 기도하게 된다. 하루에 한 2시간은 기도가 가능해진다. 말씀과 기도가 짝하지 않으면 아무리 깨끗한 그릇이 되고자 하지만 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신앙의 후배들에게 몇가지 당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공동체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동지들이 말씀과 기도에 힘 입어 깨끗한 삶, 역사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역사의 방향을 따라 인생을 투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동지들을 발굴하고 연대하여 하나님나라 확장의 사업을 잘 감당케 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본 글은 2009 성서한국대회 <사회선교사대회> 에서 강의된 내용을 녹취/정리한 것입니다.
* 녹취/정리 : 성서한국 매체국 전선영(기윤실, sychon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