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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27. 17:27

주제 성경 강의 (5일) /
다윗왕가의 존재 의미: 예루살렘 멸망후의 이스라엘(렘 39-44장)

 


김근주 교수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1. 배경
37장에서 시드기야왕은 예레미야에게 신하들을 보내어 야훼께 기도해 주기를 청한다.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던 바벨론이 애굽의 출정 소식을 듣고 잠시 포위를 풀고 떠났기에 시드기야에게 어떠한 희망의 싹이 보였을 것이다. 그는 아직도 회복의 여지가 있으며 언제든 기도하면 야훼께서 그 진노를 돌이키시리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은 갈대아인이 돌아와서 성을 완전히 불사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며 갈대아인이 떠난다는 생각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고 확언하고 있다(37:7-10). 잠시 포위가 풀린 틈을 타서 예레미야는 베냐민땅에 가려고 나섰는데, 아마도 하나멜에게서 산 땅과 연관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성을 몰래 탈출하려는 시도로 여겨지고 그는 붙잡혀서 매맞고 “토굴 옥 음실”(개역 개정-“뚜껑 씌운 웅덩이”)에 갇히게 되었다. 시드기야는 거듭 야훼의 희망적인 말씀을 기대하나 예레미야의 답은 한결같았다. 그의 요청으로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되었고 매일 떡 한 덩이가 주어졌다. 그가 전한 심판과 멸망의 말씀을 싫어한 이들은 예레미야를 죽이고자 청하고 그들에 의해 물없는 진흙 구덩이에 던져지기도 하였다 (38:6). 그러나 결국 상황은 예레미야가 전한 대로 진행되었고, 그 날이 이르렀다.

2. 다윗왕가의 붕괴

바벨론의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밤에 도망치려던 시드기야를 붙잡았고 느부갓네살의 사령부가 있던 립나로 끌려가서 거기서 그의 아들들과 귀족들이 죽는 것을 시드기야는 지켜봐야 했다. 그 역시 눈이 뽑히고 사슬에 묶인 채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39장의 보도는 특이하게도 성전이 불탄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왕상 25:8-10; 렘 52:12-14에서 성전과 왕궁, 모든 귀인들의 집이 불타고 예루살렘 성벽이 헐렸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스툴만의 지적대로 39장에서는 다윗 왕가의 붕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에서도 다윗왕가의 붕괴라는 주제가 연결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3. 그 땅에 남겨진 사람들

왕실을 쓸어버리고 유다의 모든 귀인을 죽이고 성중에남은 백성과 항복한 자와 남은 백성을 바벨론으로 옮기되, 빈민을 유다땅에 남겨두었다. 이들은 “아무소유가 없는 가난한 백성중의 일부”이었다. 아무 소유가 없던 그들에게 “포도원과 밭”이 주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꾸지 않은 포도원을 받은 것이다(신 6:11). 아무 것도 없던 이들이 포도원을 경작하며 땅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바벨론이 유다에 사람을 남겨두어 농사를 짓고 포도원을 가꾸게 한것은 당연히 제국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이다. 유다에서 생산활동이 일어나고 그를 통해 교역이 발생하면 이 모든 것이 바벨론 제국의 세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모두에게 비극적인 사실은 아닐 수도 있다. 예루살렘에서 권세를 누리며 죄악을 행하던 이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날이었겠지만, 그 땅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예루살렘에서 살지도 못했던 이들에게는 어엿한 자유인이 되고 포도원을 경작하는 이가 된 날이었다. 물론 바벨론 식민정책의 일환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그들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날이었지 않을까? 이들에게 나라는 무엇이며, 이들에게 다윗의 영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포로됨과 죽음의 세월중에서도 예레미야를 죽음의 구덩이에서 건져내기에 힘쓴 구스인 에벳멜렉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듣게 된다. 이 심판과 멸망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구원은 그 받을 사람을 향하여 베풀어진다. 까닭없는 심판은 없고 억울한 진멸은 없다. 그는 구스인이었으며 왕의 측근에 있으나 예레미야가 옳은 줄 알고 그를 살리는 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인 줄 알고 있었다(39:18). 하나님을 안다고 하나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유다와 대비되는 또 한 명의 인물이다. 믿었기에 행동한 이 인물은 예레미야서에 가득 등장하는 유력한 유대인이 아니라, 그리 높아 보이지 않은 직책의 외국인이었다. 에벳멜렉은 그래서 예레미야서 후반부에 등장하는 상황의 뒤집어짐을 나타내는 중요한 인물이다. 사실, 그는 성경 전체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바, 천대받으나 도리어 하나님을 확연히 증거하는 구름 같은 증인의 한 사람일 뿐이다. 여기에는 다말 같은 여인네를 비롯해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 창기 라합, 모압여인 룻, 헷 사람 우리야, 막달라 마리아, 수로보니게 여인, 선한 사마리아인, 로마의 백부장, 이름없는 수많은 ‘죄인들’…”(L.Stulman, Jeremiah, 320-321).

4. 유다 땅에 남은 이들을 통한 새로운 역사

바벨론으로 끌려가던 도중에 바벨론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의 호의로 라마에서 풀려난(참고: 렘 31:15)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가기보다 다 시 유다로 돌아가서 그 땅에 남겨진 백성과 함께 거하고자 한다. 그가 찾아간 곳은 그다랴가 머무르는 미스바였다. 다윗가문의 중심지는 예루살렘이지만, 그다랴에게는 미스바가 그 중심지였다. 미스바는 왕정이 등장하기 전 시대의 중요한 제의 중심지로, 사무엘과 연관이 있던 곳이었다(삿 20:1-3; 21:1-8; 삼상 7; 10:17; 참고: 예레미야와 사무엘-렘 15:1; 31;15). 흥미롭게도, 다윗왕국의 멸망이후 다윗 이전 시기의 제의 중심지가 새로이 부각된 셈이다. 바벨론에 끌려간 이들 가운데는 다니엘과 같은 인물도 전하여지고, 아마도 이사야 40-55장의 내용을 전하는 이들도 활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땅에 남겨진 자들에 대해서는 아무 내용도 전하여진 것이 없다. 오직 그들과 함께 있기 위해 그 땅에 남은 예레미야를 통해서만 전해질 뿐이다. 바벨론은 그다랴 벤 아히감을 그 땅의 ‘파키드’(“총독; governor)로 세웠고, 그에게 끌려가지 않고 남은 남녀와 아이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맡겼다(40:7). 그다랴는 예레미야의 선포를 따르고 지지했던 아히감의 후손이며, 거슬러 올라가면 요시야개혁의 핵심인물인 사반의 후손이기도 하다(왕하 22:3). 역설적인 것은 다윗왕가가 지배하던 시대에 계속해서 예레미야에게는 고난과 매맞음과 갇힘의 연속이었지만, 왕가가 붕괴되고 나자 그에게는 자유가 주어졌고, 그의 조언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를 가둔 이는 다윗왕가와 제사장들이었고, 그를 풀어준 이는 구스인 에벳멜렉과 바벨론의 군대장관이었다. 옛 질서가 가고 새 질서가 왔다. 이 새 질서의 세상은 가난한 자, 예레미야, 그리고 에벳 멜렉 같은 이들로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이전 시대의 “국외자들(outsiders)”이 중심이 된 세상이었으며,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가난한 이들이 배제되거나 밀려나지 않았다. “옛 예루살렘에서 주변부에 처하였던 이들이 새로운 도시에서는 특별한 자리를 누리게 되었다”(Stulman). 유다의 불순종과 거역에 비해, 바벨론의 군대장관 느부사라단의 조치는 놀랄만치 대조적이다. 그는 예레미야를 석방하고 토지를 재분배하고 있다.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들에게 포도원과 밭을 분배되었다(39:10). 아마도 이 땅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고위층들의 소유였을 것이다. 이 소식이 퍼지자, 인근 주변 국가의 지역으로 도망치거나 도망쳐야했던 유다인들이 죄다 그다랴에게로 다시 돌아왔고, 각자 그들이 이르른 땅에서 포도주와 여름 실과를 풍성히 거두며 살게 되었다. 전쟁의 소용돌이속에 그 땅에서 밀려났던 이들에게 이제 바벨론이 허락해 준 지역 내에서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쫓겨난 자에게 임하는 평화와 풍성함이 있었다. 여기에서 보이는 모습은 열왕기서등에서 전하는 대로 바벨론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끌려갔다는 인상과는 다르다. 그리고 전쟁직후의 참상과 황폐함도 보이지 않는다.

“포도주와 여름실과와 기름”은 이 시기가 전쟁으로부터 시간이 상당히 흐른 뒤를 짐작케한다. 바야흐로 그다랴의 시대는 새로운 시대요, 안정과 풍성함의 시기로 진전하고 있었다. 그다랴는 불안에 떨고 있던 사람들에게 바벨론에 순응할 것을 요구하면서 그들에게 평안과 안전을 제공하였다. 예레미야가 그토록 외치던 말씀들이 그다랴에게서 드디어 응답과 메아리로 울려퍼지게 된 것이다. 30-31장에 표현된 장래에 대한 희망 혹은 이사야 40-55장에서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들이 성취되는 것처럼 보인다. 바벨론에 의해 그리고 그다랴를 통해 이루어진 토지재분배와 새로운 시작은 어찌 보면 각각의 기업의 회복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상류층에 집중되었던 토지가 예루살렘의 함락과 바벨론의 진주를 통해 뜻밖에 재분배되고 회복되는 일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그다랴 공동체에 귀의한 이들 가운데는 유력한 군대 지휘자들도 있었는데(참고 52:8),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이들이 이스마엘 벤 느다냐와 요하난 벤 가레아였다. 요하난은 모든 일마다 그가 나서서 말하는 것을 볼 때, 아마도 이들 가운데 대표자로 행세하였던 듯 하다. 그는 이스마엘 벤 느다냐의 그다랴 암살 모의를 전한다. 아마도 차기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였을 요하난으로서는 미리 이스마엘을 암살해서라도 모처럼의 이 평화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했겠으나, 느다랴는 이러한 이스마엘 암살을 허락지 않는다. 그는 다른 이들을 믿었고, 암살이라는 방법을 통해 일을 해결하는 것을 인정치 않았다. 결국, “왕의 종친” 즉 다윗왕실의 한 사람인 이스마엘 벤 느다냐는(41:1) 그다랴를 초대한 자리에서 그를 죽이고 그와 함께 한 유다인들도 죽이고 그들가운데 거하던 갈대아 군사들도 죽여버린다. 그다랴를 초대하여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볼 때, 이스마엘도 이 새로운 공동체에서 일정한 위상을 지닌 이였을 것이며, 다윗왕가의 후예라는 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왜 이스마엘은 그다랴를 암살하였을까? 다윗왕가의 후예가 아닌 사람에 의해 공동체가 지탱되고, 그에게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드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예루살렘이 중심이 아니라 미스바가 중심이 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심각한 이탈로 보인 것일까? 다윗왕가의 회복이라는 이상과 민족주의의 교묘한 결합이 이스마엘에게서 보인다(참고: J.Middlemas는 이스마엘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가리켜 “왕당파(royalists)”라고 부른다: Templess Age, 12). 그는 그다랴를 죽인 다음에 그에게 붙여진 모든 사람을 이끌어 가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도, 그의 행동은 그다랴를 대체한 새로운 권력, 즉 리더십의 문제가 핵심임을 알 수 있다. 다시금 다윗왕가의 통치는 그 땅의 아무 것도 없는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쫓겨난 자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볼 수 있으며 다윗 왕가는 오히려 이들에게 평화를 깨며 죽음을 초래하며 고통을 가져다 줄 뿐이다. 다윗의 의로운 통치가 아니라면 다윗왕가의 존재의미는 전혀 없다. 

 →예레미야서에서의 다윗의 통치의 의미

22장 1-6절을 보라. 다윗의 위가 견고해지는 것은 오직 “공평과 정의(‘Mishpat’ and ‘Tzedaqah’; Justice and Righteousness)”를 행하는 것에 달려있다. “공평과 정의”의 내용은 3절의 내용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광대한 집과 광활한 다락방”을 짓는 대규모 건축 사업으로 자신의 왕권을 드러낸다. 공평과 정의가 실행되지 않으면서 백향목 궁에 거하는 다윗은 무의미하다(22:13-17). 다윗은 백향목 집 짓는 것으로 경쟁할 수 없으며 거기에 왕의 본질이 있지도 않다. 왕의 형통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 때에 온다. 그렇지 않은 다윗의 약속은 허상일 뿐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되는 다윗의 약속의 핵심에는 공평과 정의의 통치가 놓여 있다. 22장에서 이어지는 23장의 첫머리는 그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제껏 양무리를 이끌던 목자들은 양을 흩는 목자였으되, 하나님이 새로운 목자들을 세우실 것이며, 이것은 곧 등장하게 될 다윗의 의로운 가지에 관한 말씀과 연결된다.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이라”(23:5-6). 동일한 내용이 조금 더 간략하게 33:15-16에서 반복된다. 23장에서는 다윗의 공평과 정의의 통치가 흩어진 포로의 회복과 연결되어 있고(23:7-8), 33장에서는 다윗가문의 영원함 그리고 레위 제사장의 영원함과 연결되어 있다(33:17-18). 즉, 다윗가문의 영속성 그리고 제사의 영속성은 공평과 정의의 통치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34장8-22절에서는 시드기야 시대의 노예 해방 조치를 볼 수 있다. 모든 귀족들이 합의하여 이를 단행했으나 얼마후 다시 그들을 노예로 끌어와버렸다. 그들이 선언한 자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드로르”(34:8, deror)는 레위기 25장에서 등장하는 표현으로(25:10), 희년의 선포를 가리킨다. 이에 대해 예레미야는 이들이 언약을 깨뜨렸기에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하나님께로부터 자유케 하여 칼과 염병과 기근에 맡기시겠다고 선언하신다. 동족을 노예로 삼은 시드기야와 귀족들을 바벨론의 손에 붙이실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결국 희년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이방의 손에 붙이신다. 가난한 동족의 처지를 돌아보지 않은 것이 그들에게 임할 칼과 기근과 염병의 근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다윗의 의로운 통치가 구현되지 않는다면, 이들에게 다윗왕가는 말 그대로 무의미하다. 그런 점에서 예수를 찾아와 오실 메시야가 당신인지를 물어보는 세례 요한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참으로 적절하다(마 11:2-5). 그는 자신이 다윗의 후손임을 내세우시지 않고, 메시야가 오시면 일어나는 일을 실제로 보여주신다. 이것은 사 35:5-6의 성취이며, 이사야서의 이 말씀은 사 11장에서 이새의 뿌리에서 난 자가 이룰 세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5. 붕괴된 희망, 애굽으로 도피하는 공동체
“그다랴와 함께 동이 튼 미래, 포로들의 귀환과 수확물을 추수하는 일들은 왕실의 후예에 의해 무너져 버렸다”(R.P.Carroll, Jeremiah, 708). 그다랴의 통치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R.Albertz는 예레미야 52:30에 나오는 바, 느부갓네 살 23년(주전 582년)의 포로가 그다랴의 암살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포로시대의 이스라엘, 134). 예루살렘이 이미 멸망하고 다수의 사람이 포로로 끌려갔는데, 새삼 그로부터 5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후에 다시 포로를 끌고 간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이 사건은 바벨론이 세운 총독인 그다랴의 암살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만하다는 것이다(요세푸스의 유다고대사 10.181-182에도 이에 대한 진술이 있다). 이스마엘 벤 느다냐는 이후에 그다랴에게 있던 유다 사람들을 데리고 암몬 진영으로 옮기려 하였으나 기브온에서 요하난 벤 가레아등에 의해 저지되고, 자신과 몇 사람만 겨우 빠져 나간다. 그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공동체의 모든 삶을 파괴한 채 자신들은 빠져나간다는 점에서도 예레미야의 본문은 충격적이다. Stulman의 지적대로(Jeremiah, 326), 무죄해 보이는 칠십명의 예배자들의 죽음과 이스마엘등의 무사 탈출은 예레미야서에서 일관되게 볼 수 있는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번성 주제와도 연결된다. 요하난은 바벨론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국 예레미야와 바룩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하며 남하하다가, 베들레헴 근처 게롯김함이라는 곳에 머무른다. 공동체의 앞날과 애굽행을 위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하지만(42:1-6,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응답은 그들이 기대하는 것의 반대였고, 기도부탁 이전에 이미 애굽행을 결정한 그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바룩과 결탁한 친바벨론적 조작으로 여기고 애굽으로 가기를 강행하여 마침내 다바네스에 이르른다. 그다랴의 죽음이후의 심리적 공황상태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은 일관된다. 그 땅 유다에 남아 있으라는 것이다. 그 땅은 비록 갈대아인에 대한 두려움은 있으나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이지만, 요하난이 이끄는 무리는 눈앞의 칼을 피할 수 있는 좀 더 안전하고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을 가고 싶어한다. 하나님의 칼은 어디든 이를 수 있으되, 이들은 지리적으로 멀어지면 좀 더 안전하리라 여긴 것이다. 칼을 피해 살아가면 언제나 칼이 쫓아온다 (42:14-16). 칼을 두려워 않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땅에 살 때, 칼이 피해간다. 약속의 땅은 조건이 좋은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땅이며 약속이 있는 땅인 것이다. 심판 이전에는 그 땅에 그저 거하려는 이들의 태도가 문제였으나, 이제는 위험으로 가득차 보이는 그 땅을 자꾸 떠나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요하난의 부탁대로 기도한 예레미야는 그 땅에 거하면 세우고 심는 일을 하나님이 하신다고 전한다(42:10). 이 동사들은 예레미야의 소명을 표현하는 것들이며, 남은 자들에 관한 일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경륜안에 있는 일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재의 불안함으로 인해 그들은 당장 전쟁과 칼이 없는 곳으로 가기 원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약속의 땅의 위험이 아니라 안전한 땅이었던 것이다. 결국 요하난의 무리들은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했지만, 자신들의 판단을 위한 정당화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들이 버린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고, 그들이 취한 것은 가시적인 평화와 안녕이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자가 중심이 된 삶은 그래서 쉽지 않은 삶이다.

애굽에서 그들의 생활은 꽤 긴 시간 이어졌을 것이다. 애굽에 이른 유대인들의 최후가 예견되었지만, 먼 이후의 일로 여겨지며, 다만 다가올 심판에 대한 징조로 애굽의 바로의 패배가 예견되어 있다(44:30). 아마도 애가 5장에 나오는 비참한 생활상은 그다랴 암살 이후 유다땅의 처참함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참함은 느헤미야1장에도 비슷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김근주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장신대 신대원, 영국 옥스포드대학교(구약학)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와 서울은광교회 설교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 본 강의안은 2009 성서한국대회 자료집에 실린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