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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27. 16:26
 
 ▲ 2008년 한동대에서 열린 성서한국 대회. ⓒ뉴스앤조이 김은석
 
 
2000년대 초부터 복음주의 기독 청년들의 중심과업이 된 성서한국운동의 연례청년대회가 ‘회심’이라는 주제로 용인 명지대 캠퍼스에서 곧 열린다. 요즘 복음주의 기독청년들이 즐겨 쓰는 ‘성서한국’이란 용어는 1960년대부터 경건주의적 대학생선교운동을 펼쳐온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와 한국기독대학인회(ESF) 등이 슬로건으로 사용한 말이다. 그 후 1990년에 두레선교회가 성서한국을 그것의 선교과업 중 하나로 도입함으로써 일반 교우들에게도 확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성서한국’은 다소 막연하고도 추상적인 구호였으나, 2005년 제1회 성서한국대회부터 ‘사회선교’를 대표하는 용어로 전문화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아예 ‘성서한국’이라는 이름의 복음주의 기독청년들의 연합단체가 결성되었는데 이 ‘성서한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두 가지 교회사적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 그것은 1927년에 <성서조선>(聖書朝鮮)>이라는 잡지를 창간한 김교신 등의 성서조선운동을 잇는 한편,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국제복음주의자 신앙고백이었던 로잔언약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성서한국’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독청년의 응답'이라는 자기이해와 그 정체성을 어느 정도 구축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그것이 내포하는 실천적 함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교한 정리를 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성서한국운동이 한국 사회가 발생시킨 사회적 쟁점들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응답인지, 아니면 한국 사회를 성서적 가치 위에 재구성하려는 국가개조운동인지, 아니면 민족복음화의 또 다른 이름인지가 분명치 않다. 이 글에서 복음주의 기독청년들의 사회선교운동인 ‘성서한국’운동의 정체를 좀 더 자세하게 규명해보고자 한다.

‘성서한국’의 조상, 1927년 김교신의 '조선성서연구회' 기관지 <성서조선>

기독청년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응답의 신학적 전거가 된 로잔언약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올해 1월호 <복음과상황> ‘발행인 논단’에서 펼친 적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성서한국의 한국교회사적 전거만을 다루고자 한다. 성서한국의 정체성을 더 구체적으로 규명하려면 그것의 원조격인 성서조선을 외쳤던 김교신과 그의 동역자들의 비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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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한국’이라는 말은 일제 치하에서 김교신, 함석헌, 송두용, 유석동, 정상훈, 양인성 등이 1927년 7월에 창간하여 1942년 3월 158호로 폐간(김교신의 '조와(弔蝸, 개구리의 죽음을 슬퍼함)'라는 글로 폐간)된 잡지 <성서조선>(聖書朝鮮)에서 왔다. 김교신이 <성서조선>을 창간하면서 쓴 창간사와 8년 후 <성서조선>에 쓴 ‘성서조선의 해(解)’라는 글이 성서조선운동의 대지를 잘 표명하고 있다.

<성서조선> 창간사(創刊辭)에서 김교신은 영국 시인 바이런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조선인 정체성 재발견과정을 의미 있게 반추한 후, <성서조선>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고백한다. 그는 조선인들을 위해 뛰어난 학식으로 성경을 가르쳐주는 일본인 선생들의 순전한 헌신을 보고 학문은 국경을 초월할 수 있다는 야심을 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결국 조선인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고 동경유학생 친구 몇 명과 조선성서연구회를 발족시킨다. “아무리 한대도 너는 조선인(朝鮮人)이다!”라는 자각을 한 조선인 김교신은 자아(자신)와 조선을 위하여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상고하다가 “오늘의 조선에 줄 바 최진최절(最珍最切)의 선물”이 “구신약성서일권(舊新約聖書一卷)이 있는 줄 알 뿐”임을 알게 된다. 창간사는 마태복음 10:6~14의 12제자 파송담화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잡지의 행로를 선포한다.

“<聖書朝鮮>아, 우선 이스라엘 집집으로 가라. 소위 기성(旣成) 신자(信者)의 손을 거치지 말라. 그리스도보다 외인(外人)을 예배하고 성서보다 회당(會堂)을 중시하는 자(者)의 집에는 그 발의 먼지를 털지어다.<聖書朝鮮>아, 너는 소위 기독신자(基督信者)보다도 조선혼(朝鮮魂)을 가진 조선 사람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촌(山村)으로 가라, 거기에 나무꾼 한 사람을 위로함으로 너의 사명(使命)을 삼으라.<聖書朝鮮>아, 네가 만일 그처럼 인내력(忍耐力)을 가졌거든 너의 창간일자(創刊日字) 이후에 출생하는 조선 사람을 기다려 면담(面談)하라, 상론(相論)하라. 동지(同志)를 한 세기(世紀) 후에 기(期)한들 무엇을 탄(嘆)할손가.”

약 8년 후에 김교신은 <성서조선> 75호(1935년 4월호)에 ‘성서조선의 해(解)’라는 글을 발표하여 창간사의 정신을 새롭게 추스른다. ‘성서와 조선’이라는 단락에서 김교신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성서와 조선임을 천명한다. ‘성서를 조선에’라는 단락에서 김교신은 가장 사랑하는 애인과 같은 조선에게 음악·문학·예술을 주는 대신에 성서를 주어 그 뼈를 세우며, 그 피를 만들고자 하는 소망을 피력한다. 구체적으로 김교신은 기도생활의 법열경(法悅境)을 주창하거나 신비한 영적 체험을 역설하거나, 혹은 신학지식의 조직적 체계를 애지중지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하여 자신과 동지들은 “오직 성서를 배워 성서를 조선에 주고자 한다”라고 말한다. ‘조선을 성서 위에’라는 단락에서 김교신은 과학 지식적 토대 위에서 새 조선을 건설하려는 과학조선(科學 朝鮮), 인구의 8할 이상을 차지한 농민인 조선상황을 감안하여 농업조선(農業朝鮮)을 중흥하려는 기도(企圖), 신흥도시를 위주한 상공조선(商工朝鮮), 그리고 사조에 파도치는 공산조선(共産朝鮮) 등과 구별된 ‘성서조선’ 기치를 내세운다. 김교신은 위에서 나열한 조선의 미래에 대한 다른 구호들은 외형적 조선을 이룰 뿐이기에 그 외형적 조선 밑에 영구한 기반(基盤)을 놓고자 한다. 어떻게? 성서적 진리를 조선 백성에게 가르쳐 소유케 함으로써 조선 밑에 영구한 성서의 진리기반을 놓으려고 한다. 그는 이를 위해 널리 깊게 조선을 연구하여 영원한 새로운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겠다고 다짐한다. 성서조선을 위해 그는 깊은 성서연구와 조선공부를 동시에 강조한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 <성서조선>을 창간한 김교신과 그의 동지들은 성서조선이라는 구호를 사용하여 뜨거운 민족애와 기독교신앙을 조화시키고 있다. 그들은 약 15년간 계속된 성서조선운동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독립이라는 당대적 과업에 대한 충성이 영원하신 하나님나라에 대한 충성임을 여러 모양으로 피력했다. 마지막 호가 된 158호에서 김교신은 민족말살의 위기국면을 짧은 수필 “조와(弔蝸)”를 통해 묘사했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통해 그는 엄혹한 동절기의 추위에 다 죽고 남은 개구리 한 마리 속에서 조선의 소생 희망을 보았다. 급기야 일제는 이 표현이 조선민족의 부활을 암시하고 있다하여 김교신과 함석헌, 유달영 등 13인을 체포하였고 <성서조선>을 폐간시켰다. 이로써 김교신과 그의 동지들의 성서조선운동은, 성서연구모임과 잡지발간을 통해서 식민지 조선이 언젠가 독립될 것을 믿고 신생 조선이 성서적 진리 위에 재건되어지기를 열망하는 강령적인 단계에서 멈추고 말았다. 따라서 그들의 성서조선운동의 각론을 자세하게 추적하는 일은 어렵다.

다만 우리는 김교신이 걸어간 삶의 궤적을 통해 그가 지향한 성서조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김교신은 유학과 선각적 국제주의 지식인들과의 교우를 통해 사상적 지평을 확장했고, 양정고보 교사로서 민족혼을 일깨우고 기독교적 경건을 솔선수범으로 가르쳤으며, 민중들의 삶속으로 뛰어들어 그 고난의 현장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 민중친화적인 신앙인이었다. 그는 비참한 삶의 조건에 속박된 흥남 질소비료공장의 공원으로 취직하여 동포들의 고난을 함께 짊어졌다. 그의 성서조선 운동은 두 가지 지향성을 보여주었다. 첫째, 보편적인 기독교신앙이 민족사적 중심과업에 대한 응답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둘째, 영원하신 하나님나라에 대한 기독청년들의 투신은 당대에 두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투신을 통해 구현된다는 점이다. 김교신이 추구한 성서조선은 조선인 전체의 혹은 다수의 기독교 개종을 의미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김교신의 비전은 한국인들의 기독교인화를 넘어 한국 사회 자체의 골격을 복음화하려는 비전이었다. 오늘날 복음주의 기독청년들이 계승하는 성서한국운동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전 국민의 기독교개종을 기도하는 민족복음화를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넘어 한국 사회 구조 자체를 기독교적 가치 위에 구축하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성서한국운동은 개인적 회심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고 한다. 즉 한국 사회전체의 틀과 운영원리를 복음화하려는 ‘사회적 회심’을 기도(企圖)한다. 이것은 개인의 경건주의적 회심과 반대되는 길이라기보다는 그 회심의 바탕 위에서 한 단계 더 전진하는 사회적, 법적, 제도적 회심까지 기도(企圖)하는 선교운동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를 내포한다. 

성서한국운동의 중심 과업: 다시 생각하는 ‘성서’ 공부와 ‘한국 공부'의 중요성

김교신과 <성서조선> 동역자들은 성서조선운동의 씨앗을 뿌렸으나 결실을 보지 못했다. <성서조선>이 처음 등장했던 1920~1930년에도 김교신과 그의 동지들은 성서조선이라는 구호가 과학조선, 농업조선, 상공조선, 공산조선과 어떻게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진술한 적은 없다. 그들은 일제로부터 독립될 새 나라가 성서적 가치 위에 건국되기를 바라는 희망만을 피력했을 뿐, 구체적으로 성서의 어떤 가르침을 식민지 조선의 건국에 적용하려고 했는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째, 그들이 처한 식민지적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서조선>이 등장했을 때 조선은 자기결정권을 가진 민족국가가 아니라 식민지 피억압 백성이었다. 하나님의 압도적인 선행적인 구원을 공동체적으로 경험하고 하나님과 맺은 계약으로 서로에게 결속된 계약 공동체를 이룬 이스라엘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선민 공동체에게 주신 국가구성에 관한 율법들이나 사회경제 정치적 율법들이 식민지 조선에 혹은 신생독립국 조선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를 궁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둘째, 설령 식민지 혹은 신생국 조선에게 성서적 진리를 적용할 수 있었다하더라도 도대체 어떤 성서의 말씀 위에 조선을 새롭게 건국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는 또 다른 난제였을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 혹은 하나님 나라 건국이라는 통일적 주제를 다루는 책이긴 하지만 66권은 제 각기 독특한 메시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조선, 상공조선, 과학조선, 공산조선 등의 외형적 조선 밑에 ‘기반’으로 넣을 성서적 진리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여기서 말하는 ‘기반’은 아마도 요즘 용어로 말하면 신생조국 조선의 국체를 성서적 진리에 따라 규정하는 헌법적인 요강을 의미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정확하게 이 두 가지 쟁점은 바로 우리 시대의 성서한국운동이 직면한 쟁점들이기도 하다. 첫째, 한국은 성서의 이스라엘이 아니다. 한국은 다종교적 민주주의 국가다. 하나님께 공증된 모세적 권위를 갖는 영적 영도자 밑에 살아가는 공동체가 아니다. 대제사장의 영적 지도력 하에 살아가는 소수 식민지 공동체가 아니다. 이미 정치·경제·사회·종교·언론 등 제 분야에 확고부동한 기득권을 가진 가나안 원주민들이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의 희년상황을 입법화하려는 시도와 같은 경우,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법이기에,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이기에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처럼 들리기 쉽다. 요약하자면 성서의 이스라엘에게 주신 국가구성에 관한 율법들을 세속국가인 한국에 바로 적용하자는 운동은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이라는 것이다.

둘째, 성서의 진리를 한국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 때 도대체 어떤 성서적 진리를 토대로 한국 사회를 재구성할 것인가? 이것 또한 지난한 문제다. 성서적 진리를 아주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다. 그런데 한국의 헌법적 원리에 성서적 가치를 삽입하자고 말할 때, 이런 추상적이고 강령적인 원리나 가치를 헌법적 요강에 반영하자는 것은 별의미가 없다. 따라서 성서한국운동 투신자들은 어떤 성서적 진리 위에 한국을 세우겠다는 것인지를 분명히 논구하고 규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성서한국운동에 투신한 기독청년들의 현 단계에서의 으뜸 과제는 성경공부와 한국공부를 심도 있게 조화시키는 것이다. 성경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모듬살이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과, 한국 사회에 성서적 율법을 적용할 때 발생하는 어려움들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성경 66권이 가르치는 이상적인 국가공동체에 대한 깊은 이해를 확보한 후에 그것을 오늘날의 한국 상황에 접목시키고 토착화시키는 일에 투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재구성을 위한 ‘성서적 진리’와, 성서적 진리와 대립하는 현재 한국 사회

국가공동체를 구성할 때 지침이 되는 성서적 진리는 대부분 구약성경 모세오경에 기록되어 있다. 모세오경이 말하는 이상적인 국가공동체의 구성과 생활에 대한 강령들과 율법들은, 출애굽 구원과 가나안 땅 정복이라는 하나님의 선행적(先行的)인 구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응답차원에서 실행되기로 예정된 가르침들이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국가공동체의 삶에 대한 모든 율법들은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키시고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지켜질 것들이었다. 모세오경은 가나안 땅이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땅이요 이스라엘 백성은 땅의 거류민(일시적 경작자)이라고 선포하며 땅의 영구적 사적 소유를 금지했다. 그 결과 나온 율법이 레위기 25장의 희년법이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땅의 수익권을 49년만 보장했고 50년이 되는 해에는 모든 팔린 땅들이 원래의 주인에게로 되돌아가게 된다. 가난이 50년 이상, 즉 두 세대 이상 세습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 계약공동체의 일원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땅 선물을 누릴 자격을 갖게 된다. 어떤 가난한 이스라엘 국민도 땅의 소출로부터 영구적으로 소외될 수는 없도록 한 것이다. 희년법이 대표적으로 잘 보여주듯이 모세오경이 상정하는 이스라엘 사회는 자발적인 계약공동체 사회다.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으로 동포와 이웃과 자신을 결박시켰다. 하나님께 속한 계약백성은 동포들과 이웃들과 계약관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세오경의 국가생활 관련 법령들은 철저한 상호부조와 친절을 법제화하고 있다. 그것이 상정하는 이상적인 국가공동체는 우애와 협동, 상호 돌봄과 지지가 전제된 공동체다. 이 이상적인 성서적 국가공동체는 어떤 파라오의 압제도 허용하지 않는 자유사회이면서 동시에 어떤 특정 계급이나 계층의 절대적 지배 권력의 소유도 인정하지 않는 균등적인 우애공동체였다. 그것은 전체주의나 압제, 독재정치, 노예화를 금지하며, 사유재산을 보유할 자유나 거주 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그 개인의 자유는 공동체의 공공선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보장된 자유다. 결국 모세오경이 설정하는 이상적인 국가공동체는 하나님과의 계약적 친밀성 안에서 수평적인 동포와 이웃과 결속되는 공동체적인 인애주의 사회다. 인애는 계약공동체의 의리와 친절을 가리킨다. 따라서 3일 굶은 장발장이 고대 이스라엘에 태어났다면 그는 절도죄로 감옥에 가지 않는다. 모세오경의 법에 의하면 굶은 자의 생존권은 사유재산권보다 더 신성한 권리였기 때문이었다. 아주 거칠게 말하면 모세오경이 설정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개인의 자유와 형제자매적 우애 의무를 절묘하게 길항시키며, 빈부격차의 영구적 세습을 금지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는 법적 강제와 외적 규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자발적인 헌신과 우애로 유지되기로 기대되었다.

나사렛 예수는 헬레니즘화된 개인주의가 유대사회를 지배하던 당시에 아주 보수적인 원칙을 선포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오래 전 열두 지파 시대의 모세 율법을 존숭하였고 모세율법을 어긴 동시대인들을 향해 예언자적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나사렛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나라는 모세오경과 예언자들이 가르친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들의 공동체로서 하나님을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우애공동체였다. 부재지주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광범위한 유민들과 소작인으로 전락한 팔레스타인 농민들에게 이런 하나님나라를 선포했다. 메시아 취임설교로 알려진 나사렛 회당 설교에서 그는 청중들에게 오랫동안 잊혔던 희년법을 구현하라고 촉구했다가 큰 반발을 샀다. 희년을 선포하는 이사야 61:1~4을 인증하면서 청중들에게 “희년실천을 촉구하는 이사야 말씀이 오늘 여러분들의 귀에 응했습니다”라고 선포했다. 듣는 자들에게 실천 의무를 일깨운 것이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토라 말씀은 정치와 경제, 종교와 문화의 권력 상층부로 진입한 엘리트들에게는 실천하기가 어려운 계명들로 가득 차 있다. 7년에 한 번씩 종들을 풀어주고, 채무를 탕감하고, 50년에 한 번씩은 땅의 원소유자들에게 땅을 넘기라고 요구하는 것은, 힘써 부를 일군 성실한 지주들에게나 부당한 방법으로 지주가 된 자들에게나 모두 지난한 과제였다.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에 사로잡힌 자들만이 모세오경의 율법의 강령들을 실천할 수 있었다. 오순절 성령강림 때 성령의 첫 열매인 원시 예루살렘교회가 탄생했고, 압도적인 성령의 감동으로 초대교회는 물질적 유무상통의 공동체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나사렛 예수의 하나님나라 메시지가 바울에게 오면 개인구원의 메시지, 자신이 전하는 나사렛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말을 믿으라는 복음초청의 메시지로 바뀐다. 가장 큰 이유는 토라의 가르침을 실천할 사회정치적 맥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후 70년 이후 모세오경을 산출했던 팔레스타인의 영토적 국가적 실체인 이스라엘은 사라져 버렸다. 바울 서신들과 신약의 기타 책들은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을 상대로 쓰인 글들이 아니라 그레코-로만 제국의 헬레니즘화된 도시공동체에 흩어져 살던 소수의 이주민 공동체에게 보내진 글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대교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세오경의 토지법·재판법·가정법·민법·상법 등을 지중해 일대의 유대인 디아스포라에게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바울이 희년정신 안에 담긴 이상적인 모듬살이의 원칙, 모세오경이 상정한 강력한 상호 돌봄적인 계약공동체주의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팔레스타인적 무대를 넘어 국제주의적인 영적 공동체의 구성 원리로 활용했다. 그는 이방교회의 물질적인 기부로 기근을 당한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는 일을 자신의 필생의 선교사명 중 하나로 설정했다. 이것은 단지 일과성 구제활동이 아니라 모세오경이 설정한 이상적인 공동체 정신을 디아스포라 교회공동체 안에 접목하려고 한 시도로 보여 진다. 비록 그는 모세오경법을 자신의 이방교회공동체에 문자적으로 적용하지는 못했으나 모세오경이 그토록 강조한 계약공동체주의나 나사렛 예수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실천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다른 신약성경의 문헌들도 마찬가지다. 신약성경의 많은 책들이 비록 과도한 종말론과 임박한 재림신앙으로 채색되어 있지만 이 세상에 어떤 모듬살이를 펼칠 것인가에 대한 전망도 제시하고 있다. 야고보서와 요한복음, 요한서신들, 그리고 대부분의 바울서신들은 한결같이 종말에 나타날 하나님나라의 완성시점에 실현될 과격한 사랑과 돌봄을 과시하도록 격려하고 촉구하고 있다. 바울은 지극히 조밀한 종말론적인 형제자매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사역에 매진했다. 형제우애가 구현된 사랑의 공동체를 지중해 여러 거점도시들에 형성하여 예루살렘의 성도들과 교제(신 코이노니아, 물질적 유무상통)하는 데까지 성장하도록 도왔다. 이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가난한 자들의 구제와 물질적 유무상통까지 포함하는 복음의 교제를 이방교회에 가르침으로써,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국가공동체를 떠나서도 실천 가능한 신앙의 중간공리를 개발해 낸 것이다. 여기에 성서한국운동이 배울 점이 있다.

요약하면 국가를 재구성하고자 할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성서적 진리는, 압제주의에 대한 자유주의, 원자화된 개인주의를 초극하는 계약공동체주의, 무한양극화로 고착되는 빈부격차 대신에 주기적인 희년적 형평주의, 고도로 조밀한 형제자매돌봄주의다. 이런 모세오경적 계약공동체주의와 나사렛 예수 안에서 선포된 하나님나라의 진리를 과연 무한경쟁주의적 신자유주의를 채택한 오늘의 한국 사회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을까? 무한경쟁을 동력으로 삼아 개인을 동력화시키고 생산성을 높이려는 한국 사회에, 어떻게 상호돌봄적인 인애와 계약공동체주의라는 성서적 진리가 접목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까? 바울처럼 근본정신을 살리되 적용상의 변화를 가미한 중간실천공리의 개발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국가공동체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성서적 진리를 먼저 세속적인 국가를 향해 외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적인 구원을 경험한 교회 공동체에 외쳐야 한다. 하나님의 선행적인 구원을 경험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 성서적 진리가 먼저 적용되고 실험되어진 후에 세속사회로 그 파급력을 확장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복음주의 청년들 일각에서 일어나는 토지공개념운동이나 희년사상 운동은 세속국가에게 그냥 그대로 적용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행적인 구원을 경험한 교회공동체에게 우선적으로 실천을 요구한 후, 그 실천의 성과 위에서 일반적인 입법운동을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고백하여 구원을 받아도 이 땅의 질서를 순식간에 박차고 영적인 천국으로 직행하거나 순간이동하지 않는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땅의 질서 안에서 살아야 한다. 기독교 구원은 이 세상으로부터의 도피, 정치적 책임과 시민적 의무의 방기나 그것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성서한국운동은 하나님나라, 즉 인류사의 마지막 단계에 가서야 꽃필 수 있는 종말론적 사랑, 우애를 앞당겨 맛보고 실천하는 운동이다. 그것은 정책적 특혜나 여론의 영향력을 통해 일시에 기독교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고관대작의 자리를 기독교인들이 차지하는 운동이 아니며 특정도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선언하는 조야한 선교열정의 방출이 아니라, 성서적 진리를 일반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실천하는 운동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자기희생적 이웃사랑과 기독교적 영성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장이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직장을 미끼로 종교의 자유나 양심을 침해하는 무리한 직장신우회운동은 바람직하지 않다. 타 종교인들에게 극한 경계심을 자아내는 대규모 종교세력 과시 집회나 공격적인 전도행위는 기독교인들의 압도적인 선행으로 미리 감동된 사람들이 아닌 한 외인들에게는 큰 반발을 자아낼 것이다. 성서적 진리가 한국 사회 일반에 통용되는 진리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실험해보고 실증해보는 일이 중요하다. 따라서 성서한국운동의 첫 단계는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에 접목된 돌감람나무인 이방교회인 한국교회가 먼저 모세오경 율법을 교회 공동체의 신앙실천 안에 실천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는 빈부격차가 형제우애와 돌봄의 계기가 되고, 사회적 신분 차이가 적대의 담벼락으로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할 때, 세상은 교회 공동체 안에 역사하는 진리에 비상한 관심을 집중시킬 것이다. 기독교회가 모세오경과 공관복음서, 바울서신과 사도행전이 묘사하는 물질적 영적 유무상통의 코이노니아를 실현할 때, 기독교진리가 세상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개발해 낼 수 있는 모세오경의 진리의 중간실천공리는 많다. 삶의 조건(땅, 생산수단)이 없는 사람들에게 직장을 만들어 나누는 일, 장학운동, 집지어주기 운동, 생계비가 없어 돈을 빌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자 없이 돈을 빌려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 운동, 기독교적 자애로 가득 찬 의료보험 운동 등 얼마든지 중간실천공리들이 개발될 수 있다. 이 교회공동체의 실천을 통해 검증된 성서적 진리는 반드시 외부적으로 파급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성서한국운동은 고착된 기득권 권력을 견제하고 가난한 자들의 인권을 보증하는 법과 제도를 구축하는 운동을 벌일 수 있고, 장애인들과 외국인들 등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는 나라,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나라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이런 법과 제도를 운영할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가진 기독교인을 만들어 내는 일의 중요성은 조금도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적 회심이나 구원을 무시하는 사회선교는 뿌리 없는 나무처럼 시들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의 성서적 변화와 더불어 기독교적 영성과 덕을 갖춘 인물들을 사회 각 분야 요소요소에 파견하여 신적 인애와 정의를 구현한 그 법과 제도를 운영하게 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김회권 / <복음과상황> 발행인·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 복음과상황의 허락을 받아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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